2020. 8. 31. 15:36ㆍ대~헬민국!
2020년에 들어서면서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회사도 마찬가지로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하고, 재택근무 기본 지침 등을 마련하는 등 코로나 확산을 (적어도 회사 내에서는) 막으려는 나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사람의 진 면목이 나온다고 했나.
전 세계적으로 사업에 위기가 닥치니 회사마다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고, 우리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기저에 깔린 기본적인 시선은 어떠했는지 조금은 느꼈다고나 할까.
지난 수 개월 간 우리회사가 재택근무 제도를 운영해온 내역과 한계를 나 혼자서 짚어보고자 한다.
* 회사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느끼는 점이 다를 것입니다.. 아래의 생각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입장입니다..^^ *
#1. 재택근무가 도입되었던 과정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우리나라에 급격히 확산되면서, 일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혼돈이 찾아오며 거의 대다수의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 와중에 선제적으로 재택근무를 도입하여 시행에 들어간 회사도 있고,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는지 눈치만 본 회사도 있을 것이며, 혹은 전혀 위기의식 없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회사도 있을 것이다.
우리 회사는 두 번째 케이스에 해당되었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하고 회사 길 건너에서도 확진자가 계속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대응 방향이나 계획 등에 대해 직원들에게 공지하는 것도 없었고, 직원들은 개인이 조심하면서 혹시나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퍼트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안고 업무를 수행했다.
Blind 의 회사 게시판엔 이를 성토하는 글이 엄청나게 올라왔지만 회사는 묵묵부답... 아마도 운 좋게 확진자만 나오지 마라 라는 생각으로 발만 동동 굴었을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회사 주변에 회사 사람들이 많이 가는 식당 몇 곳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그 시간에 그 식당들을 방문한 사람들 동선 파악하고 급하게 재택근무에 돌입하게 되었다.
소위 말해 <간 보느라> 재택근무에 대한 지침을 명확히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재택근무였기에, 많은 혼선이 있었다.
사전에 재택근무에 대한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준비를 했었다면 이런 혼선은 없었을텐데. 업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 시스템을 집에서 이용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만 재택근무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지 싶다.
#2. 재택근무에 대한 편견 - 조직문화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재택근무를 하면 일은 안하고 집에서 논다> 라는 편견이다.
아마도 우리회사처럼 경직된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들에서 대부분의 조직장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직원들은 언제나 감시의 대상이고, 감시를 해야 일을 한다."
라는 마인드셋은 재택근무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택근무라는 방패를 들고 노는 것> 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조직장들은 <집에서 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통해 감시를 하기 시작했다. 전화, 카톡은 물론이고 정말 누가봐도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일을 억지로 만들어 할당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감시를 시작했다.
반면에 직원들은 집에서도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고있다는 오해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모든 업무에 대해 메일로 전화로 보고를 하며 내가 일을 하고 있음을 <증명> 했다.
이는 오히려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를 하는 것 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역설을 불러오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중간중간 담배를 피우러 간다던가,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러 간다던가 하는 시간, 불필요한 회의에 억지로 참석해서 시간을 버린다던가, 혹은 선배들의 시덥잖은 농담도 들어주고 반응해 줘야하는 시간 등등 업무 이외에 사용되는 시간이 은근히 많았지만, 집에서는 오히려 혼자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업무에 집중해야 했고,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지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재택근무에서 높은 생산성은 결국 다양한 방법으로의 <감시>가 효과를 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역시 경직된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바라본 시선이 아닐까 한다. 결국은 감시의 대상이니 감시를 엮어 이를 설명하고자 하니까.
#3. 명확한 업무 지시와 할당, 그리고 합리적인 보상과 페널티의 필요성
<감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린 회사들을 보면 대부분 명확한 업무 지시와 업무의 할당, 그리고 성과에 의한 적절한 보상 및 페널티가 없거나 애매하게 규정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업무 지시가 명확하지 않고, 나에게 할당된 업무가 명확하지 않으면 나의 업무와 성과는 결국 <얼만큼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느냐> 혹은 <얼만큼 오래 남아 야근을 하느냐> 가 평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칼퇴근을 하는 사람은 일을 안하는 사람, 혹은 저성과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조직장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부하 직원을 평가하기 위해 <내 눈에 얼마나 보이는가> 를 측정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곧 감시로 연결된다. 이러는 순간 각각의 직원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퀄리티는 중요하지 않다. 그 업무에 매달려 있는 <시간> 이 중요해진다. 이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열심히 매달려 있는 척>을 통해 저 퀄리티의 결과물로도 많은 인정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성과에 대한 보상과 페널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는 근무 시간 내에 내가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갔지만, 옆 동료의 업무 결과물의 퀄리티는 나의 것보다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근무시간에 업무에 매달려있는 척을 했고, 혼자 남아 야근을 하며 더 오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감시>체제 하에 있었다는 이유로 더 좋은 평가를 받고 보상을 받는다. 이는 주어진 시간 내에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악순환이 반복될 여지가 크다.
반면 이런 위기의 시대에 큰 힘을 발하는 회사는 평소 업무의 지시와 할당이 명확하고, 이에 대한 보상과 페널티가 명확한 회사들인 것 같다.
굳이 직원들 개개인이 일을 하는지 안하는지 감시하지 않아도, 각자에게 할당된 업무가 제대로 마무리가 되는지 그 결과만을 확인하면 되고, 그에 따라 잘 해온 사람에게는 보상을,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페널티를 부여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하다.
직원들 입장에서도 내가 회사에있던 집에있던,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명확하고, 나는 납기 안에 내가 맡은 업무를 완료해야 한다. 그 시간 안에 잘 해가면 나에게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고, 내가 제대로 못하면 페널티가 있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잘 해서 더 나은 보상을 받고자 한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감시하지 않아도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이며, 추가 보상은 필요없고 페널티만 받지 않는 적정선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면, 적당히 그 선에 맞춰 업무를 진행할 것이다. 조직과 조직장은 그에 맞게 보상하고, 업무조정을 하며, 부서배치도 진행하면 된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의 확산은 많은 기업들의 일하는 문화를 바꿔놓을 것이다. 코로나를 계기로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할 수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회사가 있을 것이며, 반대로 최대한 예전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아둥바둥 하는 회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코로나가 지나가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뀔 것이고, 이 변화에 나름의 방법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기존의 방법을 계속 고수하는 회사는 점점 경쟁에서 뒤쳐질 것이다.
조직문화가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비해 뒤쳐져있다며 바꾸면 되는 것이고, 회사 시스템이 뒤쳐져있다면 개선하면 될 것이며, 직원들의 마인드셋이 구시대적이라면 이 또한 교육 등을 통해 바꿔나갈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다만 변화의 방향이 맞는지 틀린지는, 정말 많은 고민과 연구와 노력을 통해 검증하고, 각각의 조직에 맞는 방향으로 잘 설정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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